Friday, May 21, 2010

벌써 1년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사자가 하이에나들에게 쫓기는 씬은 거의 볼 수 없다. 간혹 사자왕이 늙고 힘이 없어지면 하이에나들은 합심하여 그 사자를 절벽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에게 무릎꿇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 사자는 과감히 절벽으로 몸을 던져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영화의 중후반부쯤 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와 다시 하이에나들을 물리친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사자는 하이에나떼에 고전하기도 한다. 특히 암사자들은 종종 자신이 애써 사냥한 먹이를 20-30마리의 하이에나떼에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개념 꾸러미에는사자가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모습은 있어도,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는 일은 결코 들어 있지 않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나의 개념 꾸러미와 들어맞고, 달리 보면 완전히 어긋난 일이 작년 이 맘때 쯤에 벌어졌다. 인천 공항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게이트를 통과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서 한국 전화기를 들고 있던 사람들은 내가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나는 그 사자를 87-88년에 처음 티비에서 봤다. 당시 우리 집은 당구장을 하고 있었는데, 당구장에 있는 티비 안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쌍욕과 삿대질을 하며 소위 '증인'들이라는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봤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에 시장 후보로 나왔다가 떨어졌었다.

내가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와서야 나는 그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었지만, 막상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대통령 투표권을 행사한 그 해에, 그 사람을 찍지도 않았었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의 그 용감한 이미지와 겹치면서...

그가 재임 시에 행했던 정책들 그 가운데 몇 가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상식'의 선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였고,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상식을 지키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가장 용감했던 사람이 하찮은 하이에나 떼들에 쫓겨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던진 것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하도 하수상한 일들이 줄줄이 비엔나 쏘시지처럼 터지다보니 그가 가져다 준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상 깨닫는다.



보고싶네용.

맥주 이야기 6: Peroni

이름: Peroni
원산지: 이탈리아
알코올: 5.10%
종류: 라거

별명은 이탈리아어로 푸른 리본 (Nastro Azzurro)
언젠가 와이프와 늦은 저녁 수업을 마치고 통닭을 주문해서 먹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집에는 귀네스가 여러 병 남아 있었음에도 통닭(정확히는 양념 반 그냥 반)과 어울리는 맥주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떠오른 맥주가 페로니다.



일단 첫맛이 매우 경쾌하다. 진하고 쓴 맛이라기보다는 가볍고 시원한 계열. 멕시코 맥주인 코로나(corona)보다 가볍지는 않으나 시원함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앞서 소개했던 Warsteiner와 맛과 느낌에서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필히 차게 해서 마셔야할 맥주이며 겨울보다는 여름에, 영화를 보면서보다는 운동 후 시원하게 한 잔 할만한 맥주이다. 어느 안주와도 궁합이 잘 맛으나, 자극적인 맛의 안주 (양념 통닭 혹은 골뱅이 소면)와 특히 잘 어울릴 듯 하다. 물론 안주 없이 마셔도 좋다.

웅사마 맥주 지수: 3.7/5.0

다음 맥주는 새뮤얼 아담스(Samuel Adams)


정정: 지난 번에 올렸던 귀네스 편에서, 맥주 함량이 14.9 FL로 고칩니다. 그러고 보니 1파인트에 근접하군요 (1파인트 16o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