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7, 2010

맥주 이야기 외전: 하이트 맥스

맥주 이야기 외전1: 오비와 크라운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맥주는 오비였다. 마치 소주가 진로였던 것처럼. 크라운의 시장 점유율은 20% 정도에 불과했었으며, 그나마 저가였기에 이나마 가능했었다. 이 2대8의 시장 점유율을 뒤집은 것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하이트(Hite). 93년에 처음 등장한 하이트는 ‘맥주는 쓴데 크라운은 더 쓰다’라는 세간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고, 동시에 오비와 크라운의 시장점유율도 뒤집어 놓았다 (크라운 맥주는 98년에 아예 회사명을 하이트 맥주로 바꾼다.). 이 점유율 차이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오비와 카스는 현재 같은 회사의 다른 브랜드임)

하이트 맥주의 의의는 부드러운 술에 대한 전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금에야 소주도 16도에서 21도까지 비교적 온화한 도수를 자랑하고 있지만, 첫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선배들이 따라주었던 진로 참이슬은 대나무통에 거르고 아스파라긴산을 첨가했음에도 25도라는 철칙은 지켰었다. 그래도 그 참이슬은 동시대 소주들에 비하면 순한 편이었지만.

하이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취향에서 한국의 맥주 맛은 브랜드에 따라 차별화되었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이건 미국의 3대 생산량 맥주: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 도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미국에서는 이 3가지 맥주 이외에도 정말 수많은 맛과 향의 맥주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한국 최초의 맥주회사는 1952년에 두산 그룹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에 의해 새워진 동양맥주(Oriental Brewery 그래서 OB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양맥주가 일본 맥주회사의 한국 공장, 그러니까 해방 후 적산의 일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맥주 생산 60년이면 꽤 오랜 시간인데 왜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없었을까?

일단 한국의 맥주는 맥아(Hop)의 함량이 적다. 어떤 물을 쓰건, 어떤 맥아를 쓰건, 맥아의 함량이 적으면 맛이 밍밍해진다. 이건 일차적으로 가격 때문이다. 맥아를 적게 쓰게 되면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도 맥아를 적게 쓰되 단가를 낮춘다. 둘째로 한국 사람들은 함께 어울려 정신 없이 마신다. 게다가 맥주는 주로 2차 술이지 1차부터 마시지는 않는다. 맥주를 마시는 경우엔 대개 소주가 이미 위와 뇌를 점령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 경우 맛있는 맥주보다는 ‘시원하고 싼’ 맥주가 어울릴 수밖에 없다. 셋째로 여러 주류 가운데 고급 맥주의 위치가 어정쩡하다. 맥주는 싸긴 하지만 많이 마시므로, 결과적으로 소주보다 비싸다. 그렇다고 와인이나 고가의 양주가 주는 섬세함(sophistication)을 부여하는 술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고급 맥주를 만들 유인이 별로 없다.

난 한국 주류회사들이 짧은 시간 내에 유럽이나 미국의 맥주만큼의 맛과 향을 낼만큼 따라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적인 주류, 막걸리, 소주, 혹은 전통주들을 좀더 정교화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아사히,삿포로, 태국의 싱하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맥주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한다. 최근의 하이트 맥스(Max)처럼 몰트 맥주 (맥주에 호프 이외의 보리를 넣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한 맥주)가 나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