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휴가를 맞아 아내와 함께 파리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9월 빠듯한 살림에 비행기 삯이며 체류비 등으로 인해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아내는 '동생을 보고 격려하기 위해서'라는 거의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말로 나를 설득했다. 설득당한 내가 바보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파리 샤를 드 골 공항까지는 대략 8시간. 인천에서 파리보다 4시간여 짧은 일정이다. 나는 신경이 다소 예민한 편이라 환경이 바뀌면 쉽사리 잠을 들지 못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행 8시간 내내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오후 5시 30분 비행기를 타서 익일 오전 8시 30분에 내렸는데, 당직 근무 직후 출근한 느낌?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개선문 근처에서 내린 것이 약 10시 30분. 예약을 해 둔 민박집을 찾아가서 짐을 푼 것이 11시 정도였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12시쯤 개선문 근처의 샹젤리제 거리(Av. de Champ-Elysees)를 둘러보았다. 오~샹젤리제 라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사로도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는 각종 명품 브랜드와 값비싼 식당,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 켜지는 아름다운 가로수 장식으로 인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라는 슬로건으로 1992년 현직이던 부시를 누르고 당선되었었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겐 문제는 환율이다. 몇 년 전만해도 달러와 유로는 1:1, 혹은 달러가 유로보다 강세였지만, 현재 달러와 유로는 1:1.4. 샹젤리제 근처의 중급/하급 레스토랑의 경우 점심 식사가 25-30유로 정도이니 점심 한끼로 한 사람당 35-40달러 정도 드는 셈이다. 싸고 맛있다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점심 값을 내고 보니 36유로. 팁과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지만, 이건 뭐...
게다가 말이 안 통한다. 영어 정말 안 통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영어는 한국에서의 일본어와 비슷하다. 간단한 회화를 하기 위해서도 손짓, 발짓, 그리고 몸짓을 동원해가며 '싸 실부쁠레' (ce S'il vous plait: 이것 부탁합니다)를 연발해야하는... 물론 관광지에서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서빙을 하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정말 꿀먹은 벙어리마냥 눈만 껌뻑이다 '주는 대로' 먹은 적이 있었다. 물론 가벼운 웃음과 함께 '메흐씨(Merci: 감사합니다).'
파리에서의 숙박과 식사는 편차가 꽤 크다. 일류 호텔의 하루 숙박비는 대개 500-600유로 (80-116만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급 레스토랑 식사의 경우 일인당 200 유로를 쉽게 넘긴다. 대신 싼 유스호스텔이나 민박집의 경우 30-50 유로로 하루 숙박을 해결할 수 있으며, 아침이나 저녁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저녁을 먹은 후, 거의 현지 주민화된 처남은 우리를 개선문으로 데려다주었다. 파리에는 3개의 개선문들이 있는데 원래 오리지널은 콩코르드 광장 근처에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높이 15미터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본 나폴레옹이 크게 실망하고선 다시 웅장한 크기로 제작할 것을 명해 184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물론 나폴레옹은 그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개선문은 프랑스 '국민 국가(nation-state)'의 형성 및 유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국군의 날에는 개선문에서 샹젤리제까지 프랑스 군이 라 마르세에즈를 부르며 행진을 하고, 개선문의 4개 기둥에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몰한 무명 용사들을 위한 불꽃이 24시간 타오르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개선문은 그냥 사진찍고 한 번 올라가 구경하는 장소이겠지만 프랑스인들에게 개선문은 21세기의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을 규정하는 상징적 장소인 것이다.
개선문을 내려와 샹젤리제 거리를 다시 걸으며 마카롱을 하나씩 먹었다. 미니 초코파이처럼 생긴 마카롱은 형형색색의 달콤한 빵과자인데, 정말 맛있게 달다.
리볼리 거리 (av. Rivoli)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하고 숙소로 돌아와 취침. 옆에서 잤던 처남 말에 따르면, 눕자마자 3초만에 코를 골았다고... 나도 어떻게 잤는지 기억이 안 난다.ㅋㅋㅋ
to be continued...
2 comments:
비행기에서 내려 피곤할 때 찍은 공항사진 대박입니다... 그래도 멋진 여행도 하고 좋았잖아요..ㅎㅎㅎ 오빠가 제일 좋아했던 것 중에 하나는 파리의 빵. 블로그에 빵 이야기도 한 번 올리시지요.. :)
글쎄 말입니다. 지금 '파리 Day 2'를 기다리고 있는 중...
말이 그정도로 안 통한다니 답답하셨겠군요. 하긴 불란서사람들은 영어를 잘 해도 일부러 모르는 척, 안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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