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9, 2011

She's Gone

와이프가 집을 나갔다.

하와이에서 열리는 The Association of Asian Studies (AAS: 직역하자면 아시아학 협회) 박사 논문 워크샵 참석차 일주일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올 1월 와이프의 연구가 워크샵에 뽑혔다는 (10대 1 정도의 경쟁률) 소식을 들었을 땐, '휴가' 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떠나고 보니 괜시리 내 책상 왼쪽에 있는 와이프 책상만 계속 쳐다보게 된다.

나의 현재 미국 생활은 와이프와 동선이 매우 겹친다. 우선 일어나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사무실에서 연구를 한다. 물론 수업이나 회의 등의 경우엔 2-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옆에 있다. 그리고 같은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 그래서 한 번은 일주일에 과연 몇 시간을 떨어져 있나 (그래봐야 반경 1km 이내지만) 계산해 봤더니 가장 길었던 주가 12시간 가장 짧았던 주는 0시간이었다.

나의 미국 유학 생활은 2008년 5월 이전과 이후, 지금의 아내되는 사람과 만나는 시기로 나눌 수 있다. 2008년 5월 이전에는 의욕 과잉이었는지 능력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운이 없었던 것인지 하는 일마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과가 꼬였고,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계속 줄어들어 정말이지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진지하게 하곤 했었다.

와이프를 만나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되고, 대화할 사람이 생기게 되고, 웃을 일이 많아지고, 그리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됨에 따라 내 삶이 즐거워졌고, 와이프와 와이프로 인해 만나게 된 여러 인연들이 힘든 대학원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단언하건데 내 인생에 복(福)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면 아마도 와이프가 가져다주는 것일 것이다.


몇 시간 전 통화했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토론'이랜다. 심지어 밥먹으면서도 차 마시면서도...


Thursday, March 24, 2011

몽셀미셸

몽셀미셸 (Mont Saint Michel) 부제: 파리 Day IV

미카엘 천사의 산이라는 이름의 몽셀미셸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반도가 시작하는 곳에 있다.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던 아내에 따르면 프랑스어 교재에는 어김없이 역사적 유적의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교회로도, 성으로도, 그리고 감옥으로도 쓰인 유명한 관광지는 12세기부터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여 20세기 중반에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유인 최고(最高)층의 천사상을 1950년대에 헬리콥터를 동원해 실어 날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은 현재 바닷가를 메우는 공사가 한창이기에, 후대에 방문하게 관광객들은 조석 간만 차로 인해 하루 12시간은 섬이 되었다가 나머지 12시간 동안은 육지가 되는 몽셀미셸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새벽 530분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오전7시에 St. Michel 역으로 가서 관광버스 기사와 접선. 40인승의 버스를 기대했었지만, 승객은 겨우 6명에 불과했다. 영어, 불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버스 기사는 친절하게도 행선지 주요 관광지 설명을 위해 군소리 없이 언어로 말해 주었다. 그런데도 버스 기사였음. 흐흠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 4시간여가 걸려 도착한 몽셀미셸은 간조여서 차를 주차하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기사는 오후 3시쯤 돌아올 때에는 주차장이 바닷물로 거라고 일러주었다.

투어는 성문을 지나 최정상까지 나선형으로 걸어올라 가도록 되어 있었다.

입구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가다. 여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몽셀미셸에 것은 일본인 관광객들! 파리 샹젤리제에서도 아시아계 관광객의 태반은 일본인들이었었다. 노르망디 주변은 프랑스 지역에서는 쉽게 없는 애플 사이다 (알코올이 15도에 달하는) 홍합 스프를 특산물로 판매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머무르는 동안 (6) 술을 (와인/맥주/사이다) 마신 날이 없었는데 덕에 우리가 묵었던 여관의 주인은 우리를 매우 좋아했었다. 대개의 여행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 녹초가 되어 들어오곤 했었는데 우린 매일 8시경에 와인을 1-2 사서 들어와 같이 마셨으니

조금 올라가다 보면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표식인 백합무늬를 곳곳에서 있다. 교회가 아니라 왕실 소유의 성이나 감옥이었다는 증거. 몽셀미셸은 아래에서 차근차근 성을 쌓아 나가기도 했지만, 언덕 위에 있던 교회를 기반으로 외연을 넓혀나가면서 만든 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정상에는 이렇게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는 반면, 바로 아래쪽에는 기사들의 회의 장소와 식당, 귀빈 응접실 등이 16-18세기에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공공화장실이 유료 (.40 ~ 1유로).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대중이 사용할 있는 공적 공간에 있는 사설 화장실은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한다. 물론 무료 공공화장실도 있다. 그러나 보면 차라리 돈을 내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정도로 더럽다. 새삼 한국의 깨끗한 공공화장실이 생각난다. 몽셀미셸을 떠나기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처남.


Sunday, March 13, 2011

Mendeley

Mendeley는 인용 및 참고문헌 관리 프로그램이다.
논문을 쓰면서 혹은 쓴 후에 잘 정리된 참고문헌 목록을 각주, 미주, 혹은 따로 참고문헌 (references)라는 형태로 덧붙여야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우선 인용 패턴이 학문마다 심지어 한 학문 내의 저널마다 제각각이어서 어떤 경우엔 저자, 연도, 제목이지만, 다른 경우엔 저자, 제목, 논문명 등으로 참고문헌을 정리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게다가, 요구하는 내용도 제각각이다. 어떤 저널은 풀 네임 (Full Name)을 어떤 저널은 이름(first name)의 경우에는 이니셜을 요구하기 때문에 30-40개 정도 되는 참고문헌들을 일관되게 정리하자면 아휴~~

인용 및 참고문헌 관리 프로그램은 이런 불편함(?)을 해결해주기 위해 등장했다. 상업용 프로그램들이 여럿 있는데, 대체로 작동 원리는 MS-Word나 기타 워드프로세스 위에서 필드를 삽입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원래 쓰던 것은 EndNote라고 학생 버전의 경우 50달러 수준에 살 수 있었지만, 최근 한 워크샵에 참석한 후 Mendeley라는 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



Mendeley의 장점은
1. Import가 꽤 쉽다. 물론 기존에 쓰던 Endnote도 Import 기능을 제공해 주었었지만 불완전한 부분이 꽤 많아 내가 직접 쳐넣는 경우기 많았었는데, Mendeley는 완벽하진 않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한결 나은 Importing을 보여준다.

2. 관리가 쉽다. 웹버전과 데스크탑/랩탑 버전 둘 다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둘 다 연동(Sync)이 된다. 다시 말해, 내 컴퓨터 A에서 작업한 것을 웹과 연동시켜 놓으면 다른 내 컴퓨터 B에서 연동을 시키면 업데이트 되었던 내용들이 컴퓨터 B로 들어간다. Endnote는 이 기능이 없어서 숫제 이걸 위해 USB를 따로 들고 다녔어야 했다. 새 버전은 이게 된다고 들었는데 학생 디스카운트가 아직 안 된다고 한다.

3. 공짜다. 웹 용량 500MB을 넘겨 사용하려면 월 일정액을 내야하지만, 아마 그럴 일 당분간 없을 것이다.

4.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가능하다. Endnote에서 넘어온 가장 큰 이유가 이건데, 웹 및 내 컴퓨터 상에서 읽은 논문에 표시 및 밑줄 치기가 가능해서 읽은 논문 관리가 매우 용이하다. 물론 중요한 논문들은 출력해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봐야하지만 그렇지 않은 논문들은 밑줄 좌악에 간편하게 노트를 달면 그걸로 OK!

인용 프로그램을 써야한다면 한 번쯤 사용해 보시기를 권한다.
링크는 http://www.mendeley.com/

Sunday, March 6, 2011

연애시대

나와 나의 아내는

1. 우선 같이 학생이다.
결혼한 한국 유학생은 주변에 많다. 하지만 같이 학생인 경우는 드물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더 드물다. 수업 조교일을 하면서 학교에서 받는 돈은 넉넉하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의 생활을 보장해 준다.

2. 아직 아이가 없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 아이가 있기 마련인데, 아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저녁에 남는 시간이 있게 되고...

1과 2의 요인이 합쳐지면 연애하듯이 각종 데이(발렌타인 데이, 생일, 만난 날, 결혼 기념일) 등에 여전히 연애시대와 같은 감수성을 보여준다 (보다 정확히 보여줘야하는 경우가 많다).




다운타운에서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며 저녁을 함께 했다.

다이어트

미국에 건너온 첫 3년 동안 나의 몸무게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첫 1년은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 10파운드 (lbs) 정도 빠진 적도 있었지만, 곧 원래 몸무게로 되돌아가는 놀라운 관성력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결혼과 더불어 15파운드가 불었다. 당시는 무게로서의 파운드는 익숙치 않아, 체중계에 나타난 난생 처음보는 숫자들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kg 으로 변환한 결과, 80kg가 넘는 숫자를 보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그걸 뺀다고 한 것이 어언 1년. 주변에서는 결혼살이네, 나잇살이네, 그거 절대 안 빠지네,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던 내 살들은 거의 1년 동안 무서운 관성력을 보여주며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동네를 뛰었으며 (3km씩 9km),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병행했었었다.

누가 그랬더라? 적당한 운동은 식욕을 자극한다고... 운동한 만큼 식욕이 늘어 운동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11년 봄학기 박사논문 프로포절로 인한 수면시간 절감+식욕의 약간 감퇴+운동으로 승화된 스트레스+그리고 적당한 요가 덕분에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 요가를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섰더니 두둥... 올 1월에 비해 8파운드가 빠져있었다.

여러 요인 가운데 요가가 절대적인 것 같은데, 이게 의외로 칼로리 소비가 높다. 게다가 꽤나 고난이도의 자세를 요구하기도 하고... 특히 이 용사3자세 (Warrior 3)는 하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정말 어려운 자세다. 그리고 요가를 마치면 무엇보다 대사활동이 촉진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이어지는 유산소 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 등에 매우 좋다.

Saturday, January 22, 2011

부산에서

겨울 방학을 맞아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떠나기 위해선 비용도 시간도 만만않게 드는 쉽지 않았던 결정이지만 막상 돌아오는 때가 되면 늘상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여기 미국 땅이 싫어서가 아니라, 한국 땅이 너무나 편하고 여전히 좋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내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예 못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으로 시집온 아내는 매 끼니마다 올라오는 생선 요리가 약간 부담스러운 듯 하다. 그러다가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면 만만한 게 생선회라 생선횟집으로 가면 거기서도 많이 못 먹는데, 그걸 본 내 어머니가 '나도 그랬다'를 연발하면 더 부담 ^^;;

나에겐 고향이고, 아내에겐 시댁인 부산은 해가 뜨는 것을 보기에도 좋고 지는 것을 보기에도 좋다. 2010년 결혼하기 전 아내될 사람이 잠시 인사왔을 때, 일몰 전 다대포(다대포 해수욕장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에서 동생이 찍어준 사진. 출사도 꽤 하고, 사진도 잘 찍으며, 사진기도 좋고, 게다가 색보정까지 한 사진이라 정말 잘 나온 듯 하다.




원님 덕에 나팔분다고 부산 놀러온 아내 덕에 나도 정말 간만에 태종대를 가 봤다.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조개구이를 먹었는데,



이거 먹을 때까지는 좋았지만, 다음 날 아내는 급체로 하루 종일 누워 있었음...-_-;;

연말엔 잠시 거제도에. 거가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거제도를 가려면 진주를 거쳐 돌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가덕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면 된다. 덕분에 집에서 거제도 가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연초까지 무료라는 거가대교를 건너 12월 31일의 첫 해를 거제도에서 맞이했다.





정말 추웠음...

몇 시간 뒤 내려온 처가 식구들과 같이 해운대에서 송년회. 그리고 구랍 일출은 친가와 거제도에서, 신년 일출은 처가와 해운대에서...





P.S.보시다시피 노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제서야 포스팅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Tuesday, December 14, 2010

파리 Day 3

파리 Day 3



A. 마레

전날 심하게 많이 움직였던 탓인지 느지막이 일어나 마레 (Marias)로 향했다. 마레는 젊은 층이 주로 찾는 패션지구. 그리고 그에 맞추어 비교적 저렴한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철역 Saint-Paul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서 역시나 에스프레소 한 잔. (결국 미국 돌아와서 40불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40불짜리라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맛있는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진다.)




B. 라스 뒤 팔라펠

지도에도 나와있는 라스 뒤 팔라펠은 팔라펠이라는 일종의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인데, 점심 시간에는 정말 글자 그대로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거의 30분을 밖에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관광객은 물론이고 마레에 놀러온 프랑스인들까지도 즐겨 찾는다고 한다. 피타라는 이집트 빵 사이에 각종 야채와 야채를 으깨어 튀긴 것들을 싸먹는 음식이었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관광객에게 걷는 것은 의무이자 특권이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걸어야하는 것은 물론이요, 바삐 어떤 곳에 가야하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시테 섬에 있는 노틀담 대성당을 보기 위해 우리는 마레지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카페에 들러 무언가를 마시고... 뜨거운 와인인 뱅쇼 (Vin Chaud) 와 핫초코인 쇼꼴라(Chaud Chocolat). 정말이지 프랑스는 먹을 거리가 참 많다. 뱅쇼는 오렌지를 얇게 1-2개 잘라 넣어 마시는데 알코올의 거북함이 사라지고 따뜻함이 입안을 감싸고 돈다. 물론 1잔 마셔도 취한다.ㅎㅎㅎ 쇼꼴라는 진득한 초코렛 중탕을 그냥 혹은 우유에 타서 마시게 되는데, 한국에서 마시는 핫초코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으니 프랑스 가시면 꼭 즐기시길.




C. 셰익스피어 서점

시떼 섬의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에는 셰익스피어 서점이라는 영어책 전문 책방이 있다. 영화 Before sunset의 촬영을 이 서점 근처에서 했다 하니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감회가 새로울 듯. 와이프는 소원을 적어 책방 어딘가에 붙여 두었다. 내용인 즉, 나중에 아들 딸들과 같이 파리에 다시 오겠단다. ㅎㅎㅎ





D. 노틀담 대성당

노틀담 성당의 일요일 저녁 미사는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이루어졌다. 신자가 아닌 나와 아내도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했으니, 파리에 들리게 되면 한 번쯤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카톨릭 신자인 처남의 설명에 따르면 한주 미사의 내용은 전 세계의 주요 성당이 모두 같다고 한다. 이 놀라운 통일성!



숙박지로 돌아오는 도중 지하철에서 재미난 경험을 했다. 파리 지하철에는 지하철을 타고선 혹은 지하철 승강장 근처에서 아코디언이나 색소폰을 멋지게 연주하는 '거리의 악단'들이 많다. 파리 시의 오디션을 통과해야 합법적인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던데, 정말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것이 듣기도 보기도 좋았었다. 사진을 찍거나 혹은 같이 웃어주면 1유로 안팎의 돈을 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라고 한다.ㅎㅎㅎ 멋지지 않은가?



to be continued...